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시절, 앨 고어 부통령 집무실에서 생긴 일이다. 비서관 한 사람이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황금으로 장식된 부통령 전용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는 구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극한에 이른 업무 스트레스가 불현듯 표출된 것이다. 33세인 그는 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예일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칼럼니스트로도 인정받는 전도유망한 재원이었다. 앞으로 앨 고어 부통령과 함께 일하며 더 성장한다면, 정계에서나 언론계에서 큰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일을 즐기지 못했으며 염증을 느껴왔다. 그리고 더는 이렇게 일할 수 없다고 결단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부통령 세면대에 구토를 끝낸 후 사직서를 던졌다.
글.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백악관을 나온 그는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면서 자신을 불행으로 몰고 간 직업이라는 형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싶었다. 대형 캠핑 차량을 임대해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다른 직업 형태를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현재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의 청년 시절 이야기이다. 중년의 그는 프리 에이전트를 자처하며 조직에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일하고 있다.
다니엘 핑크의 사례는 사람과 직업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들어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직장 백악관, 그것도 권력의 핵심부가 어떤 이에게는 갑작스러운 구토를 불러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이 된다. 이렇게 보면 절대적으로 좋은 직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이 있듯 자신에게 맞아야 좋은 직장이다.
신중년, 나에게 맞는 일 찾기
인생의 후반전을 뛰기 위해 준비하는 신중년에게 직업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릴 수도 있다. 따라서 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실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나에게 적합한 일이란 무엇일까? 여기에 추상적으로 접근하면 위험하다. 직업은 IT, 제조업, 무역업 등과 같은 업종(業種)로도 구분되고 마케팅, 회계 등 직종(職種)으로 나뉠 수 있다. 업종과 직종을 따지지 않고 특정한 환경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행복감을 느끼며 높은 성과를 내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용 형태가 최우선이 된다. 체계적인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으며, 앞에 예를 든 다니엘 핑크처럼 ‘독립노동’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는 낮이나 밤같이 특정 시간대에 일하는 것이 우선시되기도 한다.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업종, 직종, 환경, 고용 방식, 근무 시간 등을 망라해서 세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편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신중년의 직업 선택에서 특히 주의할 점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내 스타일에 맞는 일’이라고 어렴풋이 여기는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봉사가 타고난 체질이라고 확신하고 은퇴 후 NGO에 들어갔는데 성격과 자질이 모두 어긋난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편견이 앞서서 자신을 면밀하게 따져보는 절차를 생략했던 것이다. 신중년의 특성상 잘못된 직업 선택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 ‘가슴이 뛰는 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등의 용어는 멋지게 들리지만, 매우 추상적이다. 청년이라면 한 번쯤 뛰어들어 실패를 경험해도 된다. “이 산이 아니었나?”라고 웃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신중년에게 이런 낭만적 사고가 허용되지 않는 현실이다. 흥미, 선호도, 취향 등은 좋은 직업의 일부 요소이다. 우리가 ‘적성에 맞다’라고 할 때 적성은 ‘능력’을 말한다.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잘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 ‘잘하는 일’은 좋아하기 때문에 더 잘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심리검사 + 조언 듣기 + 경험을 통한 검증
워크넷 홈페이지(http://www.work.go.kr/)
비교적 손쉽게 나의 직업적 적합도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고용정보원 워크넷(www.work.go.kr : 홈 > 직업·진로 > 직업심리검사 > 성인용 심리검사 실시)에서 성인 직업심리 검사를 무료로 받아보면 된다. 직업 선호도뿐만 아니라 역량이나 적성 등 다양한 검사를 입체적으로 받기 바란다. 그런데 이 검사 결과를 맹신하면 위험하다. 여기에 덧붙여 가족이나 동료, 친구 등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내가 이런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등과 같이 질문하며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업 전문가들은 자신에게 맞는 직업 탐색을 위해 구체적 경험, 반성적 성찰, 추상적 개념화, 능동적 실험이라는 지식 획득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하지만 간과되는 것이 ‘능동적 실험’이다. 나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한 그 일을 충분한 시간을 두어 경험해본 후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신중년 직업 상담을 하면서 선호도, 역량, 여건이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도표로 만들어 이야기하곤 한다. 단순한 도표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잘 연구하고 검증하여 ‘나를 행복하게 할 일’을 찾아가기를 바란다.